유시민, <나의 한국 현대사>

민주화세대와 산업화세대의 화해를 꿈꾸며

by Husky

Oct 12, 2017 | 9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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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출신 성분’은 의미 있는 정보를 담고 있다

“사회학 전문용어를 빌리면 나는 도시 프티부르주아(소자산계급) 출신이다.”

저자가 쓴 말이다. 그는 자기 이름을 걸고 쓴 한국 현대사 책의 머리말에서 먼저 자신의 ‘출신 성분’을 확인하라고 권한다. “대한민국이란 여러 얼굴을 가진 매우 복잡한 사회”이기 때문에 작가의 시각 또한 전체 대한민국의 일부분만을 보고 있음을 독자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지식인 중 하나인 유시민이기 때문에, 처음 책을 고를 때부터 그가 사실 위주의 역사만 나열하지는 않을 거라고 기대하고는 있었다. 역시나 그는 책의 초점을 역사적 사실 자체를 소개하는 데로 두지 않고 ‘현대사’를 대하는 독자에게 자기 자신만의 역사관을 만들어가도록 촉구하는 데로 이끌려 했다. 저자 또한 대한민국의 일부분만을 보고 있음을 인정한 만큼, 이 책을 읽는 우리들 각자도 대한민국을 보는 고유한 관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1959년과 2014년의 대한민국을 가로지르는 두 가지 신념, ‘민주화’와 ‘산업화’

1장 ‘역사의 지층을 가로지르다’에서 저자는 전후 세대가 태어난 1959년과 책이 출간된 당시인 2014년을 인구 수와 국민 소득, 문맹률 등 각종 사회 지표와 경제 지표로 비교하며 대한민국이 55년에 걸쳐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해왔는지를 소개한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한민국은 ‘평등하게 가난한 독재 국가’에서 ‘불평등하게 풍요로운 민주 국가’로 변화했다. 이러한 정의를 내리게 한 가장 중요한 관점은 ‘국민이 주권을 가진 나라가 되었는가(민주주의)’, 그리고 ‘국민이 경제적 풍요를 얼마나 보편적으로 누리게 되었는가(경제)’였다. 1959년의 대한민국은 전쟁 직후 황무지가 되어 있었고 전 국민이 극빈층 신세였다. 당장 생존하기에 급급하여 미국의 원조를 받는 나라였으니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었다.

이어지는 2장에서 저자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건국 초기 대한민국의 정치적 과제를 내팽개치고 권력만을 쫓았던 행적을 자세하게 언급한다. 책에서 말하는 이승만의 가장 큰 잘못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구성해 분단 체계를 고착화한 것과, 정치 권력을 만들기 위해 과거 일제강점기의 권력자들을 등용한 것이었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고 생각되지만 이승만이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구성한 것까지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저자는 이승만이 그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으로 판단했다고 말한다. 이승만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으므로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할 수도 있는 통일 정부를 구성하느니 국토의 절반을 잃더라도 확실한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저자의 말투에선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었을 통일 정부를 이승만이 없애버렸다’라는 뉘앙스가 풍기고 있었다.

이승만의 독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국민들은 4.19 혁명을 일으키고, 이승만의 하야를 이끌어내지만 이듬해 5.16 군사 쿠데타로 다시 한번 허무하게 주권을 빼앗긴다. 여기서 저자는 프랑스 정치가 토크빌의 말을 인용한다.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대한민국은 4.19를 통해 민주주의의 새싹을 틔우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아직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를 손에 넣을 의지와 능력은 부족했다고 말한다. 물론 저자는 5.16이 성공한 쿠데타였다는 보수 집단의 생각 또한 소개하기는 한다. 유시민 개인으로서는 4.19를 5.16보다 가치 있는 사건이라고 여기기는 하지만, 역사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4.19와 5.16은 모두 그 시기의 대한민국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하고 일어났어야 할 과정이었다고 정리하고 있다.

3장 “경제 발전의 빛과 그늘”에서는 한국이 다른 개발도상국보다 훨씬 대단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원인을 분석한다. 여기서 박정희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모두 다루긴 하지만, 저자는 결론적으로 박정희를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독특한 독재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념보다는 실리를 추구해 미국, 소련, 일본의 체제를 모두 조금씩 닮은 국가주도 자본주의체제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 자본을 형성하기 위해 일본과 미국에서 막대한 차관을 들여오고 기업들에게 무제한의 투자를 해 주었다. 관세 장벽으로 수입을 막고 수출을 장려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시장에서 독점 지위를 누리게 해 주고 외화를 벌어들이게 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신임을 얻은 기업들은 막강한 힘을 얻게 되는데 이들이 결국 오늘날 재벌 기업으로 군림하게 된 삼성, 현대, LG 같은 곳이다.

저자는 과거 한국의 잘못된 행동을 비판하고 폭로하려고만 하지는 않았다. 잘못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딜레마를 자세히 밝히고, 그 딜레마 안에서 할 수 있었을 최선의 방향을 제안하려고 노력했다.

재벌의 ‘사업 다각화’는 ‘문어발 경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하게 평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략) 국영기업을 세워 중화학산업과 첨단산업을 육성할 경우 국가 중심의 계획경제 또는 국가독점자본주의를 계속해야 한다. 민간에 맡기면 결국 기존의 재벌 말고는 할 수 있는 다른 주체가 없다. 그런데 국가독점자본주의도 민간독점자본주의도 바람직하다고 하기 어렵다. 둘 다 거부하면 주력산업의 교체 속도가 느려진다. 결국 우리는 ‘콜레라와 페스트 사이의 선택’에 직면했던 셈이다. 만약 재벌체제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중략)… 재벌이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사업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게 규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자와 협력업체를 착취하는 행태를 막는 것이다.

4장 “한국형 민주화: 전국적 도시봉기를 통한 민주주의 정치혁명”에서는 4.19 이후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적 성취를 이룬 순간들을 하나하나 짚어 나가면서 여기에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소개한다.

전제정치를 타도하는 민주주의 정치혁명의 유일한 방법은 민중이 저항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중략)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그 나라의 환경과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대한민국은 국토가 좁고 인구가 도시에 밀집해 있다. (중략) 이런 조건에서 민중이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연속적, 동시다발적, 전국적 도시봉기’뿐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 작게나마 소름이 돋았다. 책이 출간된 게 2014년인데, 저자는 2016년 겨울에 벌어진 박근혜 탄핵 촛불시위를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었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실이 밝혀지자 전국 모든 곳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역사책을 읽는 이유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깊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이어지는 5장에서는 한국의 사회문화가 55년에 걸쳐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짧게 다루고, 6장에서는 남북관계의 변화를 다루며 보수 세력이 ‘안보 위기’를 인질 삼아 국민과 야당 인사들을 탄압했던 사례들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새로이 알게 된 내용은 소위 ‘주사파’라고 불리는 운동권 인사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들이 어떤 오해를 받아왔는지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작가의 말을 온전히 믿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거부감이 들기도 해서 개인적으로 체크만 하고 넘어갔다. 통진당 해산 결정이 여당의 ‘공포 마케팅’이었다는 식의 부분도 있어서 좋게 읽지는 못했다.

에필로그에서는 2014년 당시 가장 커다란 비극이었던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이전에도 있어 왔던 제도적, 인간적 미성숙으로 인한 대형 사고에 대해 언급하며 한국 사회 전반이 질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이와 같은 참사는 앞으로도 되풀이될 것임을 강조했다.

누가 어떻게 그 일을 해낼 것인가? ‘위대한 지도자’를 기대할 수는 없다. 고령화와 에너지 위기, 양극화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변화를 이루려면 민주주의 제도와 절차를 통해 국민의 공감을 이루어야 하는데, 이것은 산업화나 민주화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한 과제다. 각자의 욕망과 신념과 이기심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연민, 교감, 공감을 바탕으로 상호이해와 협력을 이루어야만 이 과제를 해낼 수 있다.

이것이 저자가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핵심으로 보인다. 20세기의 대한민국은 조금이라도 잘 살아보려는 개인과 국가의 욕망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산업화와 민주화의 고비를 넘겨 온 지금, 21세기의 대한민국은 각자의 욕망을 추구하기 보다는 협력과 교감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읽고 나서: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적 과제, 페미니즘

2017년 현재 대한민국을 들끓게 하는 최고의 이슈는 역시 성차별 문제다. 부모님 세대부터 꾸준히 억눌려 온 여성 인권 신장에 대한 욕망은 민주화의 요구가 해소된 시점부터 수면 위로 폭발적으로 떠올랐다. 가부장제라는 권력은 대한민국이 맞서 온 권력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국민의 대다수를 억압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권력을 점유하고 있던 대상이 국가나 재벌 같은 거대한 존재가 아닌 우리 가정 안의 아버지, 삼촌이나 시어머니 같은 개인들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겪은 억압의 모습도 다르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선명히 구분짓기도 어렵다. 가부장제와 페미니즘의 문제 또한 ‘전국적 도시봉기’를 통해 해소될 수 있을까? ‘강남역 살인사건’에 따른 대규모 집회에 이어 메갈리아, 워마드 등의 새로운 인터넷 광장이 생겨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성숙한 페미니즘이 한국에 자리잡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나의 ‘출신성분’을 밝히자면, 아버지가 11살 때 알콜 중독에 따른 당뇨 합병증으로 돌아가신 편부모 가정의 아들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아버지 상을 겪지 않은 채 자라났고 가톨릭 집안인 덕택에 차례나 제사도 겪지 않았다. 나는 가부장제의 문제에서는 무국적자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내가 얼마든지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음도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배웠다. 앞으로 나의 블로그를 읽으실 때, 이 사실을 항상 참고해주길 바란다.